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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노가의 차남, 마츠노 카라마츠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바로 1년에 한 번, 보름달이 뜨는 어느 날 밤이면 호랑이 요괴로 변해 요괴들과의 잔치에 초대받는다는 것.

그날은 랜덤으로, 언젠가는 학교에 가기 전날이라 다음날 피곤을 이기지 못해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남자아이만 여섯이나 되는 집인지라 하루쯤 밖에서 돌아오지 않아도 아무 말이 없었다는 거다. 물론, 적당한 핑계로 '오늘은 ㅇㅇ집에서 자고 올게요.'와 같은 말을 했을 경우의 일이다.

 

그 짓도 벌써 10년째에 접어들고 있고 어느덧 성인 니트가 되어버린 카라마츠에게는 놀랄 정도로 관심을 받는 일이 없었기에 근 4회 정도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가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의 형제들이 "밖에서 뻗은건가아?"와 같은 말은 할지언정 찾으러 가지 않는 쓰레기 니트들로 자라났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카라마츠는 방심하고 있던 것이다.


-


이번에도 아무도 관심주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밖에 나가려 했던 카라마츠의 팔을 무언가가 잡아끌었다.

 

"그 몸으로 어딜 가는 거?"

 

그의 손을 잡아당긴 것은 장남인 마츠노 오소마츠, 카라마츠는 멍하니 신다 말아 한 쪽 발에 처량하게 걸려있는 반짝이는 신발과 오소마츠에게 붙잡힌 오른팔을 번갈아 보았다. 어째서? 어서 가야 하는데. 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잠깐, 편의점에."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오소마츠의 뒤에 서 있는 인기척들을 느낀 카라마츠는 흠칫 놀랐다. 어마어마한 표정을 짓고서 서 있는 동생이 하나, 둘, 셋..? 한 명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느껴지는 부유감에 카라마츠는 한쪽 팔과 한쪽 발을 허우적댔다.

 

"쥬, 쥬시마아츠~? 좀, 내려주겠나?"

   

"편의점이라면 우리들이 갔다 올 테니까."

 

쥬시마츠에게 정신이 팔려있으면 쵸로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12시까지 가야한...!!"

 

카라마츠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젯밤 열이 나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약속에 늦을까 겁나 다급해진 자신을 책망했다. 이것은 비밀, 누구에게도 발설되어선 안되는 중대한 비밀이다. 혹여나 형제들 중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역시, 거짓말이었구나."

 

쵸로마츠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니.. 이건.. 그러니까!!" 누가 들어도 당황한 목소리로 카라마츠가 소리치면 "카라마츠형이 친구가 있어? 그리고 있다 쳐도, 12시 약속이면 술 약속 아냐? 그 몸으로 술 마시는 건 안되지 않아?" 하고 토도마츠의 핀잔이 날아왔다. 카라마츠가 아니, 말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은 있지만. 지금 만나러 가는 친구들 외에도 친구는 있지만!! 그리고 이 몸으로 술은 안 마셔!! 소리 치건 말건 쥬시마츠는 그대로 카라마츠를 1층 방에 눕혀놓았다. 꼼짝도 못하게 주위를 둘러싼 데다, 목발까지 멀리 치워놔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럼, 죽 갖고 올테니.."

이치마츠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닫혀 버린 문을 카라마츠는 놀란 눈을 하고선 쳐다봤다. 동생이 죽을 끓여준다. 그러면 동생에게 약한 카라마츠는 나가지 못하고 후냥-한 채로 꼼짝 않고 방 안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카라마츠는 달랐다. 12시가 지나면 호랑이로 변하게 된다. 변하는 건 들켜도 상관없다. 하지만 문제는 약속에 늦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였다. 10년간 한 번도 그날의 약속에 늦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오늘 약속에 늦게 되면 과연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분노겠지.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다.
카라마츠는 방 안에 있는 시계를 봤다. 11시 30분. 신사까지는 이 다리로 가면 30분.. 아슬아슬하다.

기어서 목발을 집어들고 벌컥- 방 문을 열고 나가려 하면 카라마츠의 눈 앞에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이치마츠의 그 특유의 불량스러운 표정이 죽을 들고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역시, 나 같은 쓰레기가 퍼다 주는 죽은 싫다는건가아아아아?"

이치마츠가 마치 야쿠자처럼 카라마츠를 몰아세우면 어느새 마당을 통해 들어온 쥬시마츠가 카라마츠를 이불 쪽으로 당겨 다시 눕혀놓았다. 마당으로 나갔으면 더 큰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어어!! 약속에 좀 보내주면 안 되겠는가??"  

"아니, 아픈데 불러내는 친구 같은 거 친구도 아니고?"

오소마츠가 그렇게 말하며 아앙-이라는 입모양을 하면 저절로 아앙-하고 카라마츠의 입이 열린다.

"일년에 한 번 밖에 못보는 친구들이란 말이다!! 어제까지도 혼자 두지 않았는가? 병문안도 안 왔으면서 이제 와서..!"

다급한 나머지 나와버린 말에 카라마츠가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동안 속으로 썩혀두고 있던 말에 형제들의 표정이 하나둘 일그러져가는 게 카라마츠의 한쪽 눈을 통해 새겨졌다.

"아, 아니.. 이건 진심이 아니.. 하여간, 나는 지금 나가야한다!!"

이번에 카라마츠가 일어나려 하면 이번에는 아무도 막아세우지 않았다. 미안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말하며 일어났다.

시계를 보면 49분, 택시를 타고 가면 5분에서 10분.. 택시가 이 시간에 주택가에 있을까. 어떻게든 늦지 않을 방법을 필사적으로 생각하던 중, 주변에 연기가 일면서 펑-하는 소리가 나 형제들의 시선이 일제히 '카라마츠가 있던'방향으로 쏠린다.

그곳에 있는 건 얼굴은 카라마츠의 형태를 하고선 몸은 호랑이의 몸을 한, 마치 4~5세의 어린 아이가 동물 잠옷을 입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한 카라마츠였다.

"""""카라마츠(형)?!"""""

카라마츠는 몰랐던 것이다. 시계가 10분 느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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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밀의 시작은..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갈까?

마츠노 카라마츠와 그의 쌍둥이 형제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다 같이 담력시험이라는 면목으로 한밤중에 신사를 찾았던 것이다.

막 중학생이 된 어린아이들은 나이에 걸맞은, 아니 나이보다 좀 더 강한 활기를 띠고서는 신사의 이곳저곳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떠들석한 형제들 사이로 한 아이, 카라마츠 만큼은 얌전히 신사의 정면에 서서 한 곳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신사의 안 쪽 깊숙한 곳을 보면 눈이 세기 힘들 정도로 여러 개, 그 눈과 눈이 마주쳐버려 옴짝달싹도 못한 채 그 안 만 몇분째 보고 있었다. 눈을 떼면 잡아먹힐 것만 같아 벌벌 떨면서 살짝 시선을 돌리면 그 눈은 카라마츠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아, 이건 위험해.' 형제들을 발견하면 분명 잡아먹는다. 그런 공포에 휩싸여 계속해서 열려있는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그 눈들을 계속해서 노려봤다.

10분쯤 지났을까, 형제들은 노느라 카라마츠를 잊고 있는 것인지, 형제들이 수풀사이로 들어가는 게 신사의 뒤편으로 보였다. 그렇다 해도 따라갈 수 없다.

형제들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신사의 문이 활짝 열었다. 여름에 맞지 않게 꽁꽁 얼어있는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내부가 한눈에 보였다.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여우의 형상을 한 남자와 수많은 눈알을 몸에 갖추고 있는 붕대를 감은 요상한 남자, 팔과 목을 잔뜩 늘린 채로 있는 이상한 남자, 고양이의 형상을 하고 있는 남자, 흰옷을 입고서 무엇이 재밌는지 웃고 있는 남자.. 하나하나 보고 있지 면 눈알이 여러개 달린 남자가 자리에 서서 카라마츠에게 손을 까닥였다. 두려움에 떨며 발걸음을 옮기고 서 있으면.

"이리와"

라고 여우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카라마츠를 재촉했다. 한 발을 내디뎌 더 가까이 다가가면 마루에 다다라 있었다.

"정말, 닮았어."

중얼거리는 흰색 옷을 입은 남성의 옆에는 눈(雪)과 같은 것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렇네에~"

목을 잔뜩 늘린 남자가 카라마츠 쪽으로 얼굴만 가까이 다가온다. 가까이에서 보니 저와 닮은 얼굴에 흠칫, 떨고 있으면. 미안미안~!! 이라며 바로 코앞에 있는 얼굴이 말했다.

 

"있지, 꼬마야-."

 

여우의 형상을 한 남성이 카라마츠의 턱을 한 손으로 붙잡아 눈을 똑바로 마주 보게 만들었다.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에 카라마츠의 입이 덜덜 떨렸다.

"우리랑, 같이 놀래?"

여우의 형상을 한 남성이 입을 한껏 올리며 웃었다.

-

"아아아아아??????? 카라마츠으 혀어어어어어어엉??????!!!!!!!!!!!!!!!!!!!!!"

토도마츠의 엄청난 소리에 카라마츠의 머리에 있는 귀가 꿈틀 움직였다. 그 몸은 이미 오소마츠의 품 안에 갖힌 채다.

"자.. 잠만, 오소마츠형?"

"일단, 카라마츠가 맞는 거지?"

시끌벅적한 형제들 사이로 카라마츠가 꿈틀대며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고 떼어내려 애썼다. 육구의 푹신한 감촉에 오소마츠에게서 하응- 이라는 이상한 소리가 나와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오소마츠으?? 일단, 이 손 좀 놔주겠는가?? 것보다, 어서 가지 않으면.. 화났을거다!!"

 

카라마츠가 정적을 깼다. 분명, 약속시간까지는 10분남짓 남아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멍하니 자신을 찍고 있는 토도마츠의 핸드폰을 보고 있으니, 답이 나왔다. 토도마츠의 핸드폰이 가리키고 있는 시간은 12:02 시계를 보니 시침은 아직 11과 12사이를 가리키고 있다.
시계가.. 느렸다. 카라마츠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마저도 귀엽다며 동생들이 저를 찍어대고 이리저리 만져대는 것은 좋았지만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니, 그 꼴로 어딜 가겠다는거야??"

그렇게 말하는 쵸로마츠의 손은 카라마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아, 온다.."


카라마츠가 떨면서 말하면 현관에서 똑똑 소리가 났다. 도대체 누구길래, 중얼거리며 오소마츠가 문을 연 곳엔 웬 요상한 차림을 한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를 쏙 빼닮은 남성 둘이 서 있었다.

"그 아이는 어디에 있지? 약속에 늦는 아이는 아닌데 말이야."

쵸로마츠를 쏙 빼닮은, 붕대를 휘감은 남성이 오소마츠의 어깨를 붙잡고 밀어내며 집 안으로 들어온다. 오소마츠가 너.. 너 뭐? 말하건말건 단숨에 카라마츠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 쥬시마츠의 손안에 들려있는 카라마츠를 집어 들었다. 표정은 누구보다도 어두웠지만 안은 모습이 마치 아기를 안은 것처럼 조심스러워 형제들은 그 광경을 벙찐 표정을 하고서 보고만 있었다.

"있지, 5분이나 기다렸고.. 우리들에게 너희 인간의 수명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기는 하지만, 약속에 늦는 건 화나고 말이지."

"미.. 미안하다...."

"약조를 깼으니, 우리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걸까나~♬"

뒤늦게 들어온 오소마츠를 닮은 여우요괴가 카라마츠의 목덜미를 잡아들고서 카라마츠와 눈을 맞췄다.

"그렇게는 안돼!!"

쥬시마츠가 구미호에게 달려들어 방심한 사이에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빼앗아 들고 품에 안았다. 카라마츠의 몸은 상당히 떨리고 있어 이치마츠의 두려움이 조금은 달아났다. 어떻게든 이 작고 연약한 생물(형)을 지켜내야한다.

"네 녀석들 도대체 정체가.."

오소마츠가 여우요괴를 잡아끌려하면 꿈쩍도 않아 오소마츠의 표정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오소마츠가 뒤에서 당기건 신경 않고 구미호가 무언가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치마츠쪽으로 다가가 카라마츠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치마츠의 팔이 품 안에 있는 카라마츠를 좀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잠깐, 누구야? 이 녀석을 이렇게 상처투성이로 만든건."


이치마츠의 품 안에 있는 카라마츠를 뚫어져라 보고있던 여우요괴의 주변에 순식간에 살기가 돌아 방 안에 있는 모두가 굳어버렸다.

"머리에 외상, 왼손 뼈와 오른다리인가...."

여우외괴에게 모두 넘기고 방 구경을 하는 듯 보였던 쵸로마츠를 닮은 붕대요괴가 분위기에 아랑곳 않고 턱에 손을 얹고서 중얼거렸다

 

"우리의 가호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리가 없는데.. 본인이 본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크게 다칠 리는 없어."

 

"꼬마야, 너 이것들 스스로 한 거?"

 

여우요괴가 카라마츠를 붙잡고 노려본다. 정신을 차려보니 품속에서 사라진 제 형이 요괴의 손에 붙잡혀 있는 것을 보고 이치마츠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카라마츠는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지 눈알을 굴리며 딱 봐도 무언가를 말하기 망설이고 있었다.


"아, 다섯 명의 같은 피를 가진 혈육들이 있었지. 이것은 그들이 남긴 것들인가-."

 

여우 요괴가 한쪽 손에 주먹을 갖다 대며 옳거니! 하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


지루해~ 심심해~, 매일같이 중얼거리지만 요괴들은 그 신사를 떠나지 못했다. 이 장소는 그들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곳. 그렇게 여기며 요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지키며 보내왔다.

예전에 이 곳을 지키던 카라스텐구는 이곳을 떠난 지 오래. 카라스텐구가 웃으며 반겨주던 이 신사는 요괴들의 놀이터와도 같은 곳으로 요괴들은 먼저 떠나버린 카라스텐구와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이 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것도 순탄지만은 않았다. 인간의 마을과 인접했던 신사는 마을에 하나둘씩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설 때마다 매번 훼방을 놓으며 그 자리를 지켜내야 했다. 우리들이 떠나면 언제 이곳이 사라질지 몰라. 그러한 불안감이 요괴들이 신사를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백년쯤 지났을까, 인간의 아이들이 찾아왔다.

겁없는 인간이 한밤중에 찾아온다해도 이번 처럼 모습을 드러내고서 끌어들이는 일 따윈 해본 적 없다. 이 아무도 찾지 않는 신사주위만 멤돌면서 생활하는데 엉뚱한데 힘을 쓸 기력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무더운 여름의 깜깜한 밤, 여섯의 인간 아이들이 신사를 찾아와 시끄럽게 굴어 신사의 문을 열고 살짝 들여다봤을 뿐이다. 때마침 그곳을 보고있던 인간아이들 중 한 명과 우연히 눈을 마주친 것 뿐. 다른때와 달리 이 꼬마아이를 끌어들인 것은 영혼의 색이 카라스텐구를 떠올리게 만들어서일까.

놀자고 끌어들여 제멋대로 계약을 맺었다. 그와 닮은 꼬마의 괴로운 모습을 보기 싫어 이름을 담보로 한 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떨고 있는 아이를 위해 요괴들은 그날 하루 아이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애단히 노력했다. 그 덕일까, 형제들이 그를 잊었다는 걸 깨닫고 다시 돌아온 그날 새벽엔 아이가 부모 손에 이끌려가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계약으로 얻은 1년에 한 번, 6시간. 그 아이가 찾아오는 날은 같이 밤하늘을 보고 수다를 떠는 정도였지만 요괴들에게 있어서는 아이를 만나지 못하는 364일 보다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계속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아이가 10번째의 약속에 찾아오지 못하기 전까진.

-

여우요괴는 아까부터 저를 때리지 못해 안달인 오소마츠를 파리를 내쫓듯, 가볍게 쳐내고선 방 안에 모여있는 형제들을 한번씩 훑어보았다. 그러고선 마치 어떤 대결에서 이긴 자의 표정을 지으며 카라마츠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흐음- 네 취급, 좋지 않구나? 역시, 우리랑 함께 가는 게 행복하겠지?"

카라마츠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우요괴와 붕대를 감은 요괴는 만족한 듯, 아까와는 다른 미소를 지었다.

"아.. 아니지? 카라마츠.... 우리와 함께 있는 게 더 행복하잖아! 그치??"
 
기에 눌려 줄곧 가만히 보고만 있던 쵸로마츠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카라마츠에 대한 취급이 심한 것은 맞다. 하지만, 저 요괴들과 함께있는 게 행복할 리가 없다.

"........"
 
아무 말 없이 여우요괴의 품 속으로 고개를 돌려버린 카라마츠에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는 쵸로마츠를 보고 붕대를 감싼 요괴는 쵸로마츠의 옆에서 떨고 있는 토도마츠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까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떨고만 있는 것이 상당히 거슬렸다.

"벚꽃색 의복을 입은 인간-. 너는 꼬마가 없어져도 아무 상관이 없는건가?"

벚꽃색.. 즉, 분홍색. 그것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을 깨달은 토도마츠는 흠칫했다. 어째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저, 저 요괴가 제 형을 붙잡고 지껄이고 있는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대한 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야!! 우린 카라마츠형이 없으면 안돼...!!"

"헤에- 그렇구나. 인간들은 없으면 안 될 형제를 죽을 정도로 괴롭히는 게 특기구나."

웃고 있는 여우요괴의 미소가 섬뜩했다. 토도마츠는 아직도 아까 덤빈 후로 기절해 있는 쥬시마츠와 살짝 쳐냈을 뿐인데도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소마츠와 완전히 패닉상태인 이치마츠와 쵸로마츠를 번갈아보고선 이 상황에 제대로 대화할 수 있는 건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토도마츠는 침을 한번 삼키고 소리쳤다.

"아.. 아냐, 그건 우리가 심한거니까...! 우리가 형한테 미안한거니까...."

"원래같으면 죽었어. 인간."

상황을 가만히 팔짱낀채로 보고있는 듯 했던 붕대를 감은 요괴가 무서운 소리를 하고선, 정말, 꼬마가 괴로워하잖아. 라며 여우요괴에게서 카라마츠를 빼앗아들었다. 자연스레 형제들이 있는 방향으로 향한 카라마츠의 시선이 토도마츠와 맞았지만, 토도마츠는 그 시선을 제대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요괴들이 하고 있는 말이 진실이라 말하고 있는 그 슬픈 얼굴 때문에.

"있지, 우린 이 꼬마아이를 보호하고 있어. 우리와 맺은 계약이 아니었다면 보통 인간은 죽었을거라고? 이상하다 느낀 적 없어? 트럭이 발가락이 짖이껴지더라도 멀쩡히 걷고 바닷물에 불어터져야 했던 피부는 순식간에 낫고 화상을 입은 다리는 흉하나 지지 않은 채 남아있어. 하지만 너네들이 던진 물건들, 그 상처들은 멀쩡히 남아있지."

붕대를 감은 요괴가 카라마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형제들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니까""

요괴 둘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너희는 꼬마와 함께 있을 자격이 없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그 곳을, 카라마츠가 없는 그 곳을, 남아있는 형제들은 울먹이며 바라봤다.

-

"우리도 데려가지!!"

아무래도 다른 요괴 셋은 오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온 것이었구나. 카라마츠는 잔뜩 토라져있는 유키온나(설녀)의 옆에 가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점점 풀어지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고선 선물이라며 준비해온 빵과 만쥬가 가득 들어있는 박스를 내밀자 삐져있던 다른 두 요괴들도 눈가에 주름을 피고선 눈을 빛냈다.

빵과 만쥬를 먹느라 정신없는 요괴들 사이를 빠져나와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다가오는 기척에 카라마츠는 옆자리를 툭툭 쳤다. 여기에 앉아. 그렇게 말하자 옆에 슥- 하고 누군가가 앉으며 스치는 풀소리가 났다.

"한번쯤은 이렇게 해야할 것 같았어."

"후후, 고맙다."

"별말씀을-."

요괴의 붉은 눈에 카라마츠가 한가득 들어왔다. 그 눈에서 눈을 떼고 있지 못하던 카라마츠의 시선이 주섬주섬 무언가 꺼내고 있는 여우요괴의 팔로 향했다. 용케 저 난장판에서 제 몫의 만쥬를 저만큼이나 챙겨온 것인지 옷자락 사이에서 나온 만쥬들 중에 하나를 권했다. 그것을 받아든 카라마츠는 손에 들려있는 만쥬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눈치 챈 거야?"

즐겁게 웃으며 말하고 있는 여우요괴의 꼬리 두어개가 흔들리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것이 마치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다. 확신하게 된 것은- 내 이름을 쵸.. 아니, 초록색 옷을 입은 동생이 불렀을 때려나.. 원한다면 그 자리에서 내 이름의 힘을 빌려 날 데려갔겠지."

"헤에~ 그래서 얌전히 있던거구나~? 하지만 정말로 위험했다구? 좀만 더 있었으면 네 형제들 목이 날라갔을지도 모른다구?"

"그러면 내가 싫어할 걸 알지 않는가? 너희는 내가 싫어할만한 일은 하지 않은 마음씨 좋은 녀석들이다."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는 여우요괴의 앞에서 카라마츠가 왜 그러는가? 묻는 말에 여우요괴는 정신을 차리고선 만쥬를 입 안에 넣었다.

"흐음~ 욱시 눠도 뫈뫈취 아눈 묘숵위얌.(역시 너도 만만치 않은 녀석이야)"

입안 가득 만쥬를 집어넣은 채 웅얼거리는 말에 카라마츠가 아? 의문을 표하면 여우요괴가 그새 삼켜버렸는지 멀쩡해진 발음으로 말했다.

"아니, 별 말 아니야."

뭔가?? 말해달라고?? 궁금하게 만드는 거 야다!! 소리치는 카라마츠를 무시하고 다리에서 벌떡 일어난 여우요괴는 카라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민 손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붙잡은 카라마츠의 표정을 보고 여우요괴는 눈을 크게 떴다.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해보이는구나, 우리가 나서길 잘했어. 여우요괴는 나무 뒤에서 엿듣고 있던 붕대를 감고있는 요괴, 백목귀와 마주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자,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구? 꼬마야-."

-

그날 아침,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드는 5명에 의해 자빠진 카라마츠는 생각했다.

아아, 역시 비밀로 두는 게 좋겠지?








+)

설정이지만 넣을 수가 없어서....

카라마츠가 요괴들과의 약속시간에 변하게 되는 이유는 밤중에 그 신사의 근처에 있으면 다른요괴들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에 요괴들이 걸어놓은 보호장치.
요력이 강한 다섯 요괴들이 옆에서 지켜주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과 친하다는 걸 알면 훗날 카라마츠에게 보복이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약속시간에 근접하면 서서히 카라마츠에게 요력이 증가하게 되고 요괴의 모습(아기 호랑이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거.

신사 주변에 살고있는 요괴들은 카라마츠가 요괴지만 인간인척하고 살고있는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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