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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소재 사망소재 주의
그곳에 간 것은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평범하게 알바를 하며 휴학 라이프를 보내기 전의 일이니 한 반년 쯤 된 것 같다. 쨍쨍한 한 여름, 가장 친한 친구인 요시와라는 저와 같이 아주 평범한 학생으로 저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꾸준한 과외로 학비에 전혀 부담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적여부를 떠나 사람마다 맞는 일이 있다. 요시와라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능통하고 그런데에 능통하지 못한 나는 결국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몸.
그렇게 편의점 알바만 하며 방학을 보내는 나에게 요시와라는 같이 가 줄 사람이 없다며 그 곳까지 끌고 간 것이다.
그렇게 찾아간 '전생체험관'은 에어컨을 제대로 틀어놔서 시원하고 좋았다. 집에서는 전기세가 아까워 에어컨 한 번 제대로 트는 것 조차 부담이건만, 전기세의 몇배나 되는 돈을 지불하는 곳에 자진해서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모순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생에 한 번 쯤 이런 경험을 해봐야하지 않겠냐는 친구의 말에 넘어가 찾아가 버리고 말았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드디어 앞의 긴 줄이 줄어들고 친구와 제 차례가 되었다. 원칙상 옆에 있으면 안되지만 당사자에게 허락을 받은 지인은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말에 나는 요시와라와 다른 방에서 요시와라가 전생을 체험하는 것을 지켜봤다.
전생이 풀이었던 친구 녀석, 방금전까지 몸을 느슨하게 흐물거렸던 친구에 의해 터진 웃음을 몇분동안 진정시키고 나서야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방을 바꿔서 들어가는 동안 친구, 요시와라 왈 "바람이 날 흔들어놓잖아~." 라는 바람에 방에 들어가서도 약간 웃어버렸다.
"이제부터 당신은...."
눈을 감고 천천히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하나하나 대답을 해가니 서서히 의식이 몽롱해져갔다. 조금씩 전생의 기억이 보였던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걸 기억해냈던 친구와 달리 저는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린 듯, 아무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아쉽게도 개인의 신상보호를 위해 기록은 일체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사전에 확인했고, 그런(떠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사전에 들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친구에게 물어 본 거다.
친구는 네 말투 엄청났다. 갈비뼈 정말 위험할지도. 라며 중얼거렸지만 평상시엔 사소한 것에도 잘 웃던 친구는 그런 말을 뱉으면서도 얼굴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난 누구였다 하던가?"
"...엄청 형제가 많은 집의 차남이었다나봐. 나름 즐거운 인생을 산 것 같던데.”
요시와라. 넌 거짓말을 할 때 너무 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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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물어보고 끝내는 "난 어떻게 죽었지? 그것만이라도 알려줘.” 라고 물으면 친구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시선을 회피하며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일까, 전부 환상일 지도 모르는 단순한 전생의 기억일 뿐인데.
그렇게 생각한 것이 방금 전까지의 일.
약간, 그 때 떠올리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눈 앞에서 내 손을 잡고있는 이 사람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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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겐 소중한 형제가 한 명 더 있었다. 그것은 이년 전까지의 일, 우리는 그 소중한 형제를 제 손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직접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원인제공자는 우리와 소꿉친구 한 명에게 있었다.
소꿉친구인 그는 우리와 달리 매일같이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죄악감에 눌려 미쳐가는 걸 보다 못 한 주변인들이 그의 기억을 지워버려 이제 그는 더 이상 우리들과 같은 괴로움에 시달리지 못하게 되어버려서. 가끔씩 꿈 속에 아주 그리운 사람이 나왔어. 라고 말은 하지만 그게 우리 형인지는 알 방도가 없다.
우리는 그런 그가 부러우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는 애초에 잘못이 없을 지도 모르는데, 기억을 지워버렸다. 우리는 그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갖고 있고, 그리고.., 그리고 평생 지니고 살아야할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기에 그런 것은 슬퍼보일 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지내다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온 건 최근의 일.
일상으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누가 어떤 장난을 치더라도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집의 분위기는 어둡고 삭막하게 변해버린다. 그때마다 어떻게 안 것인지, 엄마 특유의 감이라는 걸까 "니트타치들, 오늘은 ㅇㅇ란다~."라며 마츠요씨가 들어와 삭막한 분위기를 없애려 노력해줬다. 게다가 매번 말하는 그 요리들은 하나같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정말 기쁘고 죄송하지만.
마츠요씨의 친절함은 우리들의 사치이다.
아무것도 모르시고, 단순히 우리가 소중한 형제 한 명을 잃어서 이렇게 어두운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리 때문에 형이 사라졌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고 지금도 그럴 용기는 없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우리는 여전히 부모님의 상냥함에 기대 니트 생활을 하고 있는 답없는 녀석들이다.
누구하나 이 공간을 나가려하지 않는다. 그가 있던 곳의 온기가 조금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모두 각자 밖에서 하던 일(취미생활)들을 멈추고 항상 모이곤 했던 안방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를 제외하고는.
나는 그 답답한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어 틈만나면 이곳저곳 다니기 시작했다. 몇 개월동안 모은 알바비는 해외까지는 못 가도 국내에 있는 곳 몇군데를 다녀올 정도는 모여 있었다. 그 중 한 곳이 이 곳. 원래같으면 산이 있는 곳 위주로 돌아다녔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도시에 들르고 싶어 급하게 표를 끊어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아무 목적지 없이 거리를 걷다 편의점에 음료를 사러 들어왔고.
그 곳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형을 만나 버린 거다.
분명,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머리로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느라 정신없었다. 데카판이 만든 약으로 모두의 기억을 조작했다거나 우리에게 단단히 화가나서 이런 시나리오를 짜서 2년 동안 우리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몸은 이미 눈 앞에 있는 형을 쏙 빼닯은 이 사람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에, 그러니까.. 같은얼굴?"
목소리마저 같다. 애초에 여섯쌍둥이 인 우리와 같은 얼굴이라니 말도 안되잖아. 정말 카라마츠형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던 나는 멀어져가는 온기에 정신을 차렸다. 억지로 손을 빼버려 빨개진 손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미 나온 해답의 도출과정을 여러번 재확인 했다. 같은얼굴..? 그런 반응은 형답지 않다. 그렇다는 건, 눈 앞에 있는 건 형이 아니다. 바보같은 토도마츠. 카라마츠형은 죽었다. 그 마지막을 직접 두 눈으로 봤잖아.
"저기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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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시야사이로 웃고있는 다섯명의 형제들이 떠올랐다. 모두 하나같이 같은 얼굴을 하고선 행복해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석양을 배경으로 걷고있는.. 그 중 한명은 이 사람인 듯 싶었다.
그 외의 것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기억속의 나를 제외하고 5명의 같은 얼굴, 그렇다는 건 6명의 형제....
"저기 혹시.. 형ㅈ.."
아차차,그렇게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언제나 요시와라가 저한테 하는 말이 있다. "너는 네 기준에서 중요한 것만 말해서 오해사니까, 그건 안 좋다구." 방금 전의 말도 어쩌면 첫대면인 사람 앞에선 상당히 뜬금없는 말일텐데.
"에..? 형?"
"아, 아뇨 아무것도.. 그것보다 왜 손을 잡은 건가요?"
아무런 대답도없이 고개를 든 얼굴은 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이런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모성애를 자극시키는 얼굴이었다. 그것이 왜일까, 나에게는 무섭게 느껴졌다. 역시 처음 본 사람이 손을 강하게 잡아오는 건 소름끼치는 일이려나. 아니, 초면인 사람이 이러는 경우가 있을까? 텅텅빈머리로 간신히 거기까지 도출해내고
혹시 저를 아시나요?라고 물으려던 순간, 아 죄송합니다. 하고 가게 밖으로 허둥지둥 사라졌다.
나갔던 그는 “똑같은 얼굴이라니~ 너무 반가워서요.” 라며 편의점 앞애서 대기하고 있었다. 밥이나 같이 먹자는 그의 제안에 기다려준 것도 그렇고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기에 수락해버렸다. 밥도 얻어먹었지만 지나칠 정도로 비싼 것을 얻어먹어 버려서 또 만나서 보답을 해야하나 고민하던차에 카페를 가자하여 또 수락했다. 커피만이라도 내가 내야지.
확실히, 초면에 이렇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다른 배에서 태어나 이리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니 엄청난 일이다. 똑같이 생긴 사람 3명이 만나면 죽는다고 했던가, 듣기로는 토도마츠라는 사람의 형제는 무려 여섯쌍둥이로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본래 여섯쌍둥이라는 것이 가능은 한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그런 쪽의 지식은 잘 모르겠다. 일단은 앞에 산 증인이 있고 나도 산 증인이니,사실은 사실이다.
듣기로는 몇 년 전 사라져버린 한 명의 형제가 저와 똑같이 생겨 그 인줄 알고 이렇게 무작정 인근 카페까지 끌고 와버렸다고, 결국엔 사과를 받고 이것도 인연이라며 번호교환까지 해버렸다.
본래 거절을 잘 못하는 이 성격은 매번 곤란한 일을 불러왔다. 그런고로 그다지 번호를 준다거나 좋아하지 않지만 너무나 익숙하게 말을 걸어오고 대화를 나누는 내내 울먹이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니 괜히 측은해져버린게 가장 컸다고할까. 결국 번호를 줘 버렸다.
미안, 더 같이있고 싶지만 차편때문에..
라며 토도마츠라는 아이는 몹시도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왜 미안하다고 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로서는 아쉬울 것도 서운할 것도 하나도 없는데.
그냥 우연히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전생의 형제라는 것은 분명 독특한 사건이지만 그런 것 치고는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어차피 저도 내일 알바 때문에 얼른 가야하니까. 조심히 가시고, 그럼. 이라며 말을 마치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뒤를 돌자마자 토도마츠가 통화를 하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그런 건 알 바가 아니다.
집에 돌아와 마미가 차려준 따끈한 밥을 먹고있으면 라인으로 [오늘은 반가웠습니다.]라는 문자가 와 있어 [네]라고 답장하고서 밥을 마저 먹는다.
"이 아이는 어째서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걸까."
네 형은 사라진 게 아니라 너희가 죽였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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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도마츠!!"
집에 도착하자마자 웬일로 밝은 얼굴을 한 형들이 현관에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정확히말하면, 내가 아닌 카라마츠형의 소식이지만.
"어땠어?"
자초지종은 예의가 아닌 걸 알지만 돌아오는 기차에서 실컷 설명했다. 얘기를 하는 내내 너무 조용한 전화기 너머가 신경쓰였지만, 나라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 거기에 최대한 자세히 형들에게 보고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하려 애썼다.
"그냥, 형 같은 면도 있었지만.. 나를 못 알아 봤는걸. 일단은 폰 번 교환햇으니까, 이걸로 다 같이 대화하자!"
원래 같았으면 절대 안 넘겨 줄 핸드폰이었지만 카라마츠형의 일이라면 달랐다. 모두가 그동안 그리워해 온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드라이 몬스터라 불리더라도 이런 것 정도는 함께 나누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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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만나버렸어. 전생의 형제."
그렇게 말하니 요시와라가 먹고 있던 콜라를 내 얼굴에 뿌려버려 패스트푸드점에 있던 많은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이쪽으로 내다 꽂혔다. 요시와라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지, 방금 전까지도 제 입에 있던 액체들이 내 얼굴에 흐르고 있는 걸 전혀 신경쓰지 않는 걸 보면 분명 그런 걸테지.
"아니아니, 전생이잖아? 애초에 그 때 했던 전생체험이 진짜였다고는 해도 전생이라고? 네 말대로라면 전생의 너랑 지금의 너가 동시대에 살아있었단 말?"
잠만, 앞에 있는 탁자 휘었다.그 탁자는 아무 죄도 없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전생에 대한 것과 다르긴하다. 그렇다고해도 사후의 일이란 건 모르는 것이니. 그 형제라는 사람이 갖고있는 사진을 보여줬는데 전생의 나라는 느낌이 강한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쌍둥이인 사람이 지금 내 또래쯤이면 전생의 나는 젊은 나이에.. 감사합니다."
천천히 점원이 갖다 준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가며 하나하나 설명해간다.
"그런 일도 가능한건가."
생각을 들킨 걸까. 요시와라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진 듯 했지만 그래도 계속 말에 대한 반응은 하고 있어 계속해서 어제 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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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번호까지 교환해버렸다."
"연락하지마."
"뭐?"
가만히 내 말을 듣고있던 요시와라의 표정이 점점 싸늘해지는가 싶더니 내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빼앗고 번호를 지워버렸다.
"아..!"
"말했잖아, 그 토도마츠인가 뭔가하는 사람하고 연락하지 말라고. 너한테 좋을 거 없어."
그렇게 말하는 요시와라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불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를 내면서 불안해하는 요시와라는 알고지낸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본 적이 없었던 것인데. 그렇게도 불안한 걸까. 전생의 내 인생과 내가 엮이는 것이.
게다가, 본래 나긋나긋하고 장난끼가 많은 녀석이라 정말 심각하게 질 나쁜 사람을 제외하고는 성격이 꽤나 나쁘다는 녀석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인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연락조차 하는 걸 반대한다면. 전생에서의 내.. 아니, 토도마츠의 형제들은 심각하게 질 나쁜 사람의 부류에 들어가는 것이라 보면 되는걸까. 그러고보니 토도마츠는 어째서 나에게 거짓말을 한걸까.
"연락처, 지워서 서운해?"
"아니, 전혀. 상관없다만?"
본인이 번호도 지우고 차단해놨으면서 왜 저렇게 괴로운 표정을 짓는 것 일까. 정말로 토도마츠를 봐도 조금 무섭다는 느낌 외엔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니 다시 요시와라의 얼굴이 사납게 변해버렸다. 혹시 요시와라는 알고있는 게 아닐까.
"요시와라, 내가 전생의 형제들과 만나지 않길 바라는건.. 그들이 거짓말쟁이여서인가?"
그렇게 말하니 요시와라의 표정은 더 이상 무서워 질 수 있을리가 없을텐데, 흡사 어릴 적 봤던 공포영화의 괴물로 점점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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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주일째라구!!
카라마츠형, 아니 사토라는 이름을 지닌 형과는 하루동안 연락을 잘 주고받았다. 답장들마다 상당한 어색함이 묻어있어 좀 괴롭긴했지만 지금처럼 답장하나 조차 없고 확인조차 안 하는 상황보단 나았다.
"만나러가자."
가만히 내 핸드폰을 보고 있던 오소마츠형이 꺼낸 말이었다. 만나러가? 연락조차도 꺼려하는 형을?
"매일같이 이렇게 답장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어떠한 이유로 연락을 못하는 걸 수도 있잖아. 또 다시 녀석을 놓치면."
여유가 없는 것이 오소마츠형답지 않았다. 하나둘씩 방에서 각자 제 일을 하던 형들이 나갈채비를 시작하고 나도 비장의 옷을 꺼내 차려입으려했지만.
안돼, 파카로 하자. 그러면 우릴 알아볼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는 쥬시마츠형에 의해 비장의 옷은 옷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했다.
오랜만에 다시 분주해진 방을 보고 다시 확신했다. 우리는 역시, 카라마츠형이 없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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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저번의 알바 장소에 같은 시간대에 일하고 있었다. 일단 일 끝나고 말해보자고 하려던 내 입이 열리기도 전에 오소마츠형과 쵸로마츠형, 이치마츠형이 가게의 문을 열어재꼈다.
딸랑- 울리는 가게에 어울리지 않는 푸른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네 녀석! 왜 우리 연락을 씹은거야?!!”
"번호가 지워져버렸다."
"어떻게 하면? 걱정했잖아! 그래도 라인은 친구등록 되어있었고!"
"그게.. 친구가 차단해버리고선 풀지 말라고 하더군.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그 녀석의 말이라면 믿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아 잊고 있었다. 지금의 형은, 카라마츠형이 아니다. 우리와 이십몇년을 산 세월은 없고 전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채워진 사람. 어느덧 당장이라도 카라마츠형을 때릴 것만 같은 오소마츠형의 옆으로 낯선 얼굴이 하나 다가와 오소마츠형의 당장이라도 나갈 듯 쥐어져있는 손을 붙잡았다.
"그러면 안되지, 저번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려고? 같은 영혼을 가진 저녀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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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아카츠카 여섯 쌍둥이를 알게 된 것은 대학교에 들어오고 얼마 안 지났을 때였다. 때마침 SNS가 흥행하고 있어 이사람 저사람 신나게 팔로우를 하고 즐기길 일주일, 우연히 본 '#여섯쌍둥이' 태크는 꽤 신기해서 마츠노 토도마츠라는 사람을 팔로우했다. 아니, 실은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그 녀석과 너무 똑같이 생긴 프로필에 팔로우 해버렸다. 이 녀석한테도 말할까 말까 고민도 잠깐 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도플갱어 관련 괴담을 듣고 엄청나게 벌벌 떨던 녀석을 떠올리고 그냥 보여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친구와 똑같이 생긴 여섯쌍둥이의 일상글들을 본 감상은, 재밌네~ 였다. 과연, 형제들로 팔로우 수가 오천이 넘어갈 만 하구나 싶었다. 각자의 형제들은 개성이 뚜렷해서 매번 게시물들을 챙겨보다보면 누가 누구구나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끝까지 옷으로 맞혀버렸지만.
그래도 그 형제들 중 한명은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오랜 소꿉친구 녀석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되는 녀석, 차남이지만 형제들에게 언제나 손해를 보는 포지션에 있는 녀석. 어떨 때는 그게 웃겼지만 가끔씩은 너무하다싶어 화가나기도 했다. 달려있는 댓글들도 보면 부분부분 너무하다는 글이 있을 정도였고.
그러다 언제부턴가 형제들에 대한 게시물들은 일절 올라오지 않고 일 년에 한 번(지금까지 두 번 뿐이지만)
[미안합니다, 보고 싶어요]
라는 글만이 올라왔다. 소문 상으로는 형제 중 한명이 죽어버려서 많이 우울해하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몇개월, 녀석과 전생체험관에 방문했지만 설마하고 넘어갔다. 아무리 얼굴이 같고 여섯쌍둥이었다고 말을 했어도 그런 것 쯤은 어디선가 보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시대에 살고 있고. 그렇게 여겼었다.
"나, 만나버렸어. 전생의 형제."
라는 말을 당사자에게서 직접 듣기 전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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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녀석의 전생의 형제들이 그 여섯쌍둥이의 다섯명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시도때도 없이 불안감에 휩싸여야했다. 그동안의 게시물(고등학교 시절에 재미로 봤던 것이지만)들을 보면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이기주의자이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지금 사토의 일상따윈 아랑곳 않고 깨버릴 수 있는. 그래서 연락을 하지 말라 일어두었다. 알바를 관두라고는 했지만 그건 역시나 생계가 달린 일이니 강요하지는 못하는지라, 녀석이 알바를 하는 날이면 가끔씩 앞을 서성였건만.. 설마, 정말로 직접 찾아올 줄이야.
"너는 누군데..!!"
빨간파카, 분명 장남일 것이다.
"저기 말이지, 여긴 씨씨티비도 있고.. 밖에선 몇몇 사람들이 광경을 보고 있다고? 여긴 아카츠카가 아니야."
씨씨티비를 가리키며 말하자 서서히 주먹이 내려갔다.
"저보다 한살 많나요? 저는 사토의 친구, 요시와라 카츠키라고 합니다. 폰번을 지우고 라인을 차단시킨건 접니다.
저와 사토는 카라마츠라는 분의 마지막을 알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자 휘둥그레진 눈들이 당황한 걸 한눈에 보여줬다. 우와, 같은얼굴로 같은 표정이라니 무서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초록 파카를 입은 남자가 사토 앞에 도게자를 해서 상당히 놀랐다. 뒤이어 세명의 마츠도 도게자를 하기 시작했다. 빨간파카를 입은 녀석은 결국에 다른 형제들에 의해 강제 도게자를 하게되어 총 5명의 성인남자가 모두 사토의 앞에 엎드려 사죄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미안해!! 카라마츠.. 우린....”
“미안해! 저기, 카라마츠. 엄청 그리....”
"어째서 나에게 사과하는것이지? 몹시 불쾌하다."
"무슨...."
붉은 파카를 입은, 그래 장남 오소마츠가 격하게 반응하며 일어났다. 슬쩍 사토를 등 뒤로 밀었지만 사토는 뭔가 할 말이 있는지 고개를 가로젓고선 다시 앞으로 나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전생의 내가 당신들의 형제였다는 건 맞는 것 같지만, 전생은 전생이고 지금의 나는 후지모토 사토야. 카라마츠라는 인간은 분명 죽었지? 죽은 자에게 더 이상 사죄할 방법은 없어. 난 너희들에게 형제애를 단 1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도, 쿠소마츠 네 녀석 우리에 대한 기억이...!”
“그건 내가 아니라 했을텐데?”
단호한 사토의 말에 처참하게 무너진 다섯명의 형제들은 결국 나와 사토가 역까지 데려가 보내버렸다. 그 후로 한동안 사토의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듯 했지만 딱히 피해를 주거나 다가오지는 않는 듯해서, 그냥 내버려두니 하나둘씩 오지 않게 되었다. 그 후엔 그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참 자상한 녀석이다. 사토녀석.
-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니.. 화나지 않아?”
"아니, 그것보다도.. 같은 얼굴로 태어난 건 전생의 내가 그들에게 뭔가 전하고 싶었던 게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음? 그래서 답은 찾았어?”
아직 얼굴에 내가 뿜은 콜라가 남아있는지, 얼굴을 닦느라 뜸을 들이던 사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어, 카라마츠라는 사람은 마지막엔 녀석들을 형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 전하고 싶어한거 같다.”
“그거.. 우와....”
“?”
그말은, 육분의 일이라 칭하는 녀석들에게 있어선 사형선고 같은 말 아닐까. 생각하며 포테이토칩을 짓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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